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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情報

[Cool Japan Report] 일본사용설명서 1

일본 외무성이 주관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청년,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 JENESYS 2.0의 Cool Japan 리포터로 선발되어 2014년 7월 30일부터 9박 10일간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1년에 2번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으로 나누어 선발된 리포터는 일본 정부의 지원 하에 일본을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후 일본을 홍보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Cool Japan 리포터가 매력적인 것은 교통비, 숙박비, 식비가 모두 공짜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무리 환율이 1500원 언저리에서 970원 대로 내려와 여행하기 편해졌다고 하지만, 일본의 교통비, 식비 비싼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니 일본을 방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보다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없지요. 하지만, 일본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공짜는 없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GDP의 200%에 이르는 부채를 떠안고 있는 일본 정부가 35,000명을 대상으로 150억엔이라는 거금을 투입하면서까지, 세계의 젊은이들을 '모셔오는' 이유는 일본의 강점, 매력을 홍보함으로서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나아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여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입니다.[각주:1] 그래서 지금 저도 받은 만큼 뱉어나고 있는 중이지요. 


그런데 일본 정부는 JENESYS 2.0을 통해서, 특히 한국과 중국 청소년의 일본 방문을 경색된 한일, 한중 관계를 푸는 작은 실마리로 삼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일한문화교류기금 관계자의 연설이나, 외무성 아태국장의 연설에서도 이와 같은 그들의 기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 교류를 국가 간 관계 개선의 전 단계로 활용하고자 하는 구상은 '그들만의' 망상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 Doctrine인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서도 같은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Ⅳ. 한일, 중일 관계 경색 국면을 감안할 때 이 구상의 실현은 어렵지 않나요?

현재 한일, 중일 등 동북아 주요국간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북아 지역은 다른 그 어떤 지역보다도 상호의존의 증가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곳입니다.

이는 그만큼 이 지역에 비전통 연성 안보 분야에서 협력 수요가 많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비전통 연성 안보 의제는 정치적 비용은 크지 않은 대신 실제 협력의 효과가 커서 역내 국가들의 참여를 쉽게 유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유럽 다자안보체제의 진행 과정을 보더라도 경제문제에서 출발했지만 점차적으로 이슈를 확대하여 가장 민감한 사안인 군비축소에 대한 논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는 정치적 긴장과 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코자 한 역내 국가들의 공동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후략)[각주:2]

책자에는 비전통 연성 안보 분야로 원자력 안전, 에너지 안보, 환경, 재난 구호, 사이버스페이스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인적, 문화 교류를 비전통 연성 안보 분야에 포함시켜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전통 연성 안보 분야의 협력을 발판으로 전통 경성(硬性) 안보 분야의 협력을 이끌어 내자는 박근혜 정부의 Bottom-up 접근법은 전문가들로부터 비판받고 있습니다.

T.J Pempel (U.C 버클리대 정치학과 교수) : 비전통 안보 분야 및 소프트 이슈의 협력이 국가 간 협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전통 안보 분야 및 소프트 이슈의 협력에는 국가 간 협력의 키를 쥐고 있는 군 장성, 고위 외교관이 필요하지 않고, 정부 정책 역시 세트메뉴처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프트 분야의 협력과 하드 분야의 비협력이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Link

하영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 : 에너지, 환경, 문화, 지식, 기술, 젊은 세대의 교류와 같은 비정치 분야에서의 협력이 정치 분야의 협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능주의자들의 예측은 실패했다. 유럽의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Link

두 전문가는 Bottom-up 방식으로 경색된 한일, 한중관계가 풀리지 않으며, 동북아의 긴장해소를 위해 한, 중, 일 정상회담 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인식을 공유합니다.


그렇다면 Cool Japan 리포터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저는 한일관계 개선에 Cool Japan 리포터와 같은 인적, 문화 교류가 조그마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8월 15일 야스쿠니(靖国) 신사를 참배한 일본 정치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개인적인 방문인 만큼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변했습니다.[각주:3]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를 비롯한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는 것은 전범 재판에 대한 부정이자, 2차 대전의 결과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주 넓은 마음으로 전범재판에서 승자의 논리가 작용했고, 따라서 도쿄 대공습[각주:4]이나 원폭투하로 인한 민간인 학살이 미국에 책임지워지지 않았다는 일본의 논리를 시야에 넣더라도, 전범재판을 부정한다면 15년 전쟁[각주:5]에서 일본군이 자행한 여러 만행을 판단할 제도적 장치가 전부 없어집니다.

위와 같은,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이 빈발하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습니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의 言論 NOP가 공동 실시한 제2회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각주:6]를 보면, 한국과 일본 모두 상대국에 대해 좋치 않은 인상을 받는다는 응답이 좋은 인상을 받는다는 응답을 상회합니다. 한국은 작년보다 조금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70% 이상이 부정적으로 답변하고 있으며, 일본은 작년에 비해 부정적 답변이 17%나 증가하였습니다.



한국이야 아베 신조 수상을 비롯한 우익들의 반성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라지만, 일본은 뭐 잘났다고 한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불만은 결국, '역사 좀 그만 들먹이라'는 한마디로 요약 가능합니다. '1965년 한일수교 때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으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고[각주:7], 여러 차례 식민지 지배를 사과한다고 성명도 발표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사과하라는 거냐.'는 겁니다. 최근 중국에서 일본군 포로의 재판 기록이나 자술서, 중국군의 항일 투쟁 기록을 연이어 공개하면서 '역사 공세'를 펴는 것도 일본 국민이 역사를 진실과 사과의 문제가 아닌, 공격과 압박의 문제로 보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라는 한국 국민과 역사 좀 그만 들먹이라는 일본 국민 간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한 번 악화된 국민 감정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양보라는 단어와 원천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영토 문제가 결부되다 보니 한일관계는 지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지구 상에서 가장 먼 나라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인이 한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지지율 50%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박근혜 정부나,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줄 소비세 인상과 구조개혁을 앞두고 있는 아베 정권이 자살골을 넣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조사에서 한국, 일본 국민은 모두 한일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한국 : 73.4%, 일본 : 60.0%), 민간 차원의 교류 역시 중요하다고 답하였습니다.(한국 : 72.1%, 일본 : 70.5%) 이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있어도, 완전히 딴 살림 차리기엔 너무 가깝고, 얽혀 있는 것도 너무 많기 때문일 겁니다. 본인은 T.J Pemple 교수가 지적한 대로 일본이 역사 수정주의적 행보와 대외 정책과 관련된 국력 소모를 중단하고, 그 에너지를 후쿠사마 원전 문제, 30년 안에 70%의 확률로 발생한다고 하는 대지진, 잃어버린 20년, 인구고령화와 이에 따른 복지 비용의 기하급수적 증가,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재정 적자의 해결에 투자한다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도 일본의 국방비 지출 증가와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를 1930년대의 회귀로 직결시키는 논법을 중단할 필요가 있겠지요.[각주:8] 

결국, 정책 결정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국민입니다. 의회 다수당이 된 자민당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일본 국민뿐이며, 반일감정 고취에 몰입해 있는 매스미디어를 견제할 수 있는 것도 한국 국민뿐입니다. (한국 국민은 63.6%가 국민감정에 미디어보도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대답하였으며, 한일관계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도 50.9%나 되었습니다.) 비전통 연성 안보 분야의 협력이 직접적으로 전통 경성 안보 분야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인적, 문화 교류를 통한 신뢰관계의 구축이 경성 안보 분야의 변화를 추구하는 정책 결정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일본이 진심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데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분들을 위해 주로 한국과 중국에서 프리허그 캠패인을 벌이는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If you're stuck in your own country, you often fail to understand how well you can actually get along with your neighbors. We may disagree over certain territorial issues, but that doesn't mean we can't be friends. We're all the same human beings. I wanted people who watch my videos to realize that.[각주:9]


그의 말대로 한국과 일본 사이 갈등이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프리 허그에 동참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Cool Japan 리포트 활동이 한일관계에 조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길게 나열하였지만, 딱 잘라 말해 Mission Impossible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일본 전체로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에는 제동을 걸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서로를 지구 상에서 없애버릴 듯한 기세로 싸우고 있을 때도 팔레스타인 남성과 이스라엘 여성의 결혼식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국가 간 문제와 개인 간 교류, 문화 교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니까요.


최근 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는 광고 시리즈가 있습니다. 일본의 농심이자, 인스탄트 라면을 발명한 회사, 日清의 Cub Noddle CM인데요. 「この国を、楽しもう」(이 나라를 즐기자)라는 카피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왜 인상적인가. 저 역시 일본을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본과의 교류를 거쳐 한일관계 개선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 필요 없이, 일본이 맘에 들지 않고 주변에서 좋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니까 일본과 교류하기 꺼려진다고 느낄 필요도 없이, 마음껏 일본을 즐기면 되는 겁니다. 일본에 대한 판단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주의] 악성 댓글은 절대 사절합니다.


  1. Jenesys 2.0 사업 개요 : http://www.mofa.go.jp/mofaj/files/000003307.pdf [본문으로]
  2.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 http://www.mofa.go.kr/image/main/mofa_asiapeace.pdf [본문으로]
  3. "Three Ministers Visit Yasukuni on Surrender Day Anniversary; Abe Refrains," Japan Times, 15 August 2014. [본문으로]
  4. 도쿄 대공습 : 태평양 전쟁의 조기종결을 위해 1945년 3월 10일 새벽 약 백만발의 폭탄을 도쿄에 투하한 사건. 도쿄는 잿더미가 되었으며 1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본문으로]
  5. 15년 전쟁 : 1931년 만주사변에서부터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 1941년에 시작된 태평양전쟁을 하나의 전쟁으로 파악하는 개념. [본문으로]
  6. 제2회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 : http://www.eai.or.kr/data/bbs/kor_report/2014071614504448.pdf [본문으로]
  7. 여기에 덧붙여 대일 청구권 포기가 명기된 만큼,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정부 및 기업에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본문으로]
  8. 1930년대 회귀는 중일간 전면충돌을 뜻하는데, 중국과 일본 모두 자국의 파멸을 각오하면서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없다. [본문으로]
  9. "Free Hug Activist Hopes to Mend Fences in Asia," Japan Times, 14 August 20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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