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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히가시노 게이고 - 몽환화



몽환화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출판사
비채 | 2014-05-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미스터리 팬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음모로...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주의] 아래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히가시노 게이고의 흡입력은 건재하다. 설정이 머리 속에 입력 완료된 순간, 마지막 페이지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은 Top Level이라 할 만하다.


2. 이 책이 전 작품들에 비해 다소 맥이 빠진다는 의견이 있는데, 어느 정도 동의하며 본인이 보기에는 2가지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첫째, 노란 나팔꽃이 왜 몽환화(夢幻花)이며 그것이 어떤 경로로 유통되었는지, 가모 요스케(蒲生要介)와 이바 다카미(伊庭孝美)는 아키야마 슈지(秋山周治)의 살해 사건 직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건을 풀어가는 중요 인물 세 사람 중 함께 행동하는 인물, 가모 쇼타(蒲生蒼太)와 아키야마 리노(秋山梨乃)가 아무리 노력해 본들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던 것이다. 마치 왓슨이 제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 본들, 셜록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둘째, 감추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 사이의 갈등이 명확하지 않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전형적인' 할리우드 방식으로 풀어낸다면, 유출된 노란 나팔꽃을 회수하고 정보를 감추려는 정부 기관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개인 혹은 소집단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전개될 것이다. 총격 신과 추격 신은 기본 옵션으로.

여기에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일본 문화를 첨가하면, 클라이막스 부분에 감추려는 자와 드러내려는 자가 만나 다음과 같은 요지의 대화를 나눌 것이다.

"노란 나팔꽃에 관한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마시오."

"무슨 구린 일을 벌이고 있기에, 그렇게까지 정보 공개를 막으려 하는게요?"

"노란 나팔꽃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오."

"옳고 그른 것은 당신과 당신을 움직이는 정부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이 판단할 문제요.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한 것도 그렇고, 이 사건의 처리 방식도 그렇고, 당신들의 입맛대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정녕 옳다고 생각하는 거요?"

"진실과 정의가 아름다운 꽃길이라 생각하는,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발상이군요.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 보셨다면, 진실과 정의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상처입힌다는 사실을 잘 알텐데요."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감추려는 자는 드러내려는 자의 움직임을 제지하기 위해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따라서 쇼타와 리노의 조사 과정에는 추격전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이 없다. 저자가 쇼타에게 아버지와 형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감추어 왔다는 소외감과 거기에서 오는 호기심 혹은 반항심, 리노에게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을 부여했던 것도 이런 요소 없이 사건 진행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란 나팔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 것도 조사 과정의 끝 부분이었다.


3.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 답지 않은 따뜻함을 보여준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는 흔히 차가움과 따스러움의 이미지로 설명된다. 히가시노는『편지』에서 살인자의 동생, 다케시마 나오키(武島直貴)가 '살인자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 왔는지 살인자 동생의 시점에서 절절히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다케시마의 편에 서지 않는다. 간신히 들어간 회사였지만 살인자 동생이라는 이유로 창고 관리직으로 좌천당한 다케시마는 좌절과 분노에 괴로워한다. 이 때 회사 사장이 나타나 다케시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살인자의 가족을 멀리하는 행동은 당연하며, 그렇기 때문에 살인자는 자신의 행동이 가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알아야 한다고.

미야베는 다르다. 『화차』에서 끊임없이 도망쳤던 여자, 신조 고쿄(新城喬子)는 방화 살인범이자 토막 살인범이었음에도, 그녀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사회 부조리가 어떻게 그녀를 살인자로 몰아갔는지 보여줌으로서 그녀를 변호한다. 신조가 비와코(琵琶湖)[각주:1]를 보면서 이렇게 잔잔한 바다는 본 적이 없다며 눈물졌던 점이나, 토막살인이라는 잔혹한 방법을 택했어도 시신의 머리만은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 준 점, 자신이 살해한 자의 유품을 정성들여 포장한 뒤 가족에게 보낸 점은 미야베가 그녀를 '돈의 굴레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그러나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 모습으로 그려내고 싶어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 두 작가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 히가시노는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차가운' 눈으로 등장인물을 관찰해 왔다. 그랬던 그가 『몽환화』에서는 성장소설의 형식을 취하면서, 자식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아버지로 바뀌었다. 몽환화의 세 주인공, 소타, 리노, 하야세 료스케(早瀬亮介)[각주:2]가 사건을 계기로 한 단계 성장했기 때문이다. 전도유망하리라 생각하고 지원했던 원자력공학이 3.11 대지진 이후 터부시되자 전공을 포기하려 했던 소타는 원자력공학을 계속할 뜻을 굳혔다.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였으나 심리적 이유로 수영과 관련된 모든 것과 연을 끊었던 리노도 수영장에 다시 발을 담궜다. 자신의 불륜 때문에 아내와 별거하고 자식과도 만나지 못하던 하야세는 아버지로서의 자각을 확실히 했다.

이를 두고 히가시노 특유의 날카로움과 냉정함을 좋아했던 독자들은, 일본 드라마 고유의 '교훈 주기' 콘셉트를 따라가는 것 아니냐 하지만, 일단 본인으로서는 '교훈 주기' 콘셉트를 그닥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히가시노의 이러한 변화가 반갑다. 또한 작품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던 그답게 성장소설의 틀에서만 머물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4. 히가시노가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2가지였다고 본다. 하나가 원자력 발전에 관한 히가시노 자신의 메세지, 그리고 다른 하나가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에서도 다루었던 '불균등한 재능'의 문제다.

신이 재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었기에 받아야 하는 고통, 재능을 받은 사람의 고통과 받지 못한 사람의 고통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충분히 다루어졌다. 이 영화에서 살리에르는 자신과 천재 모차르트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벽을 확인하고 아래와 같이 외쳤다. 

그 때부터 우린 적이 되었소. 신과 나는. 그 분은 자신의 도구로 오만하고 음탕하고 지저분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녀석을 선택하고선 나에겐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밖엔 안 주셨어. 그건 부당해. 편파적일 뿐 아니라, 매정한 짓이야. 맹세코 당신을 매장시키겠소. 있는 힘을 다해 당신의 피조물에 해를 끼치겠소. 당신의 화신을 파멸시킬 것이오.

하지만『몽환화』는 살리에르에게 다른 방법이 있다고 알려준다. '노란 나팔꽃 씨앗이 있으면 너도 모차르트와 같은 수준, 혹은 더 나은 곡을 쓸 수 있어. 어때, 한 번 써보지 않을래?'

하지만 살리에르에게 들릴 『몽환화』의 제의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우리는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한계 기점이자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시작 지점인, 노력과 재능의 구분선이 저승의 스틱스 강만큼이나 아득함을 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도 그러했지만,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벽이 스틱스 강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을 때, 그들은 노란 나팔꽃 씨앗을 카론에게 뱃삯으로 건냈다. 하지만 그들은 카론이 인도해 준 장소가 천계가 아닌 명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신의 뜻을 거역한 대가는 처절한 파멸이었다.

그렇다면 재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재능을 받은 사람을 보며 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가. 히가시노는 '불균등한 재능'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2가지 이야기를 건넨다.

첫째, 재능은 부모로부터, 혹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재능을 살릴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에서 도리고에 신고(鳥越伸吾)는 뛰어난 운동 신경을 지녔으나 뮤지션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스포츠 분야에서의 재능과 F패턴 유전자 배열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고자 하는 유즈키 요스케(柚木洋輔)에게, 음악은 재능의 낭비에 불과하다. 그런 그에게 신고의 아버지 도리고에 가쓰야(鳥越克哉)는 아래와 같이 일갈한다. 

재능의 유전자란게 말이야. 그 뻐꾸기 알 같은 거라고 생각해. 본인은 알지도 못하는 데 몸에 쓰윽 들어와 있으니 말이야. 신고가 다른 사람보다 체력이 좋은 건 내가 녀석의 피에 뻐꾸기 알을 떨어뜨렸기 때문이야. 그걸 본인이 고마워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 (중략) 그런데 뻐꾸기 알은 내 것이 아니야. 신고의 것이지. 신고만의 것이야.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유즈키씨 당신 것도 아니지.[각주:3]

둘째, 재능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각오와 신념이 필요한 의무이기도 하다.

요스케와 다카미는 노란 나팔꽃이 세상에 나오지 않도록 감시하는 의무를 물려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쇼타는 다카미에게 '원하지 않는'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합리함을 느끼지 않았는지 묻는다. 아래는 쇼타의 질문에 대한 다카미의 대답이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중략) 모른 체해서 없어지는 거라면 그대로 두면 되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하잖아? 노란 나팔꽃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 감시를 계속해야만 해. 그것이 마성의 식물을 확신시켜버린 사람의 피를 물려받은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해. 도망칠 수 없지. (409)

재능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의 일부라 했을 때, 유산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하고, 그것을 발현하는 일은 세상에 대한 의무이며, 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각오와 신념이 필요하다는 것이 히가시노의 재능관(観)이다. 이는 나오토가 리노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주는 아래 진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오토가 늘 예기했어. 리노는 바보라고. 재능을 한껏 가진 주제에 그것을 쓸모없게 만들었다고. 리노는 수영선수로 살아가야만 한다고. 그것이 재능을 가진 자의 의무라고. 그걸 짐으로 생각한다면 사치라고. 아무 의무도 가지지 못하는 게 얼마나 공허한지 리노는 모른다면서……. (415-16)


  1.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 [본문으로]
  2. 성으로 구별 가능한 경우에는 성으로, 성으로 구별 불가능한 경우에는 이름으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3. 히가시노 게이고, 『뻐꾸기 알은 누구의 것인가』, 김난주 역, 서울: 재인, 2013, pp.395-96. [본문으로]